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접하면서 자라고 있다. 스마트폰은 장난감처럼 손에 들려 있고, 영상은 끊임없이 뇌를 자극하며, 공부조차도 태블릿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디지털 문해력은 분명 중요하고 앞으로 더 필수적인 능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많은 부모와 교사들은 한 가지 공통된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린이·청소년 발달 관점에서 본 비디지털 활동에대해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많은 시간을 화면 속에서 보내는 동안, 정작 인간 발달의 핵심이 되는 ‘몸’, ‘감각’, ‘관계’, ‘실제 경험’이 점점 더 축소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단순한 기술 적응력만이 아니라는 점은 교육계에서도 점점 더 강조되고 있다. 깊이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정서적으로 안정된 감각, 몸을 통해 배우는 조절 능력,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사회성은 디지털에서는 절대 충분히 배울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여러 연구에서는 비디지털 활동이 어린이·청소년의 발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다시 주목하고 있다.
감각 발달과 자기조절 능력: 디지털이 줄어들수록 뇌는 안정된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각 경험’이다. 촉감, 소리, 움직임, 온도, 균형감 같은 감각들은 단순히 신체적 경험을 넘어 뇌의 구조적 발달과 정서 안정에 큰 영향을 준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감각적 자극은 급격히 줄어든다. 화면은 시각과 청각 자극만을 과도하게 제공하고, 몸을 쓰는 경험은 심각하게 부족해진다.
예를 들어, 유아와 초등 연령대의 아이들은 손으로 만지고, 쌓고, 부수고, 다시 만드는 반복 과정 속에서 문제 해결 능력을 발달시키고 정서적 안정감을 얻는다. 손을 움직이는 활동은 뇌의 전두엽과 운동 피질을 자극해 집중력과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하지만 디지털 활동은 이러한 촉각적 자극을 거의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발달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비디지털 활동은 아이들의 감각을 되살리고 뇌의 자연스러운 성장 궤도를 회복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아이들이 진흙을 만지거나 블록을 쌓고, 나뭇잎을 모으거나 종이를 자르는 동안 감각은 고르게 자극되고, 이는 곧 정서 안정과 자기 조절 능력으로 연결된다.
특히 청소년기는 뇌 발달이 다시 활발해지는 시기로, 감정 조절 능력이 여전히 미성숙하다. 스마트폰과 영상 콘텐츠가 제공하는 강한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감정의 기복이 커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운동을 통해 땀을 흘리고, 글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는 시간은 과열된 신경계를 자연스럽게 안정시키면서 감정의 폭을 부드럽게 다듬어 준다.
결국 비디지털 활동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뇌의 균형을 회복시키는 정서적, 인지적 발판이다.
몸의 경험과 사회성 발달: 관계는 화면이 아니라 현장에서 만들어진다
아이들의 사회성은 관계를 직접 경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난다. 감정표현을 읽고, 협력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은 실제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발달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은 점점 더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내고, 정서적 반응이나 사회적 신호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 표정, 친구와의 말싸움, 함께 무언가를 만들며 경험하는 협력의 순간들은 사회성 발달에서 핵심적인 경험이다. 아이는 타인을 이해하는 방식과 감정을 읽는 능력을 이런 과정에서 배운다. 그런데 화면 기반 소통은 이러한 복잡한 신호를 대부분 생략해 버린다. 표정은 단순화되고, 감정의 뉘앙스는 사라지며, 갈등 상황을 직접 해결해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비디지털 활동은 사회적 발달의 토대를 다시 단단하게 세워준다.
예를 들어 보드게임을 하는 동안 아이들은 차례를 기다리고, 규칙을 지키고, 지는 상황을 받아들이며, 협력 또는 경쟁을 경험한다. 이러한 요소들은 모두 실제 관계 속에서만 배울 수 있다.
또한 야외 활동은 아이들의 사회성을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다. 자연 속에서 탐험하고 함께 뛰어놀면서 아이들은 자기 몸의 움직임을 느끼고, 타인과 속도를 맞추며, 자연스럽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다. 팀 스포츠는 말할 것도 없다. 공을 어디로 보낼지 고민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팀원과 역할을 나누는 과정에서 협력의 의미가 몸에 배어난다.
청소년기의 비디지털 활동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감정적으로 예민하고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친구들과 직접 관계 맺는 시간은 그 어떤 디지털 대화보다 강력한 경험이 된다. 손으로 만드는 활동, 독서 모임, 음악 연주, 글쓰기 모임, 운동 동아리 같은 활동은 청소년 스스로가 자신의 감정과 가치관을 탐색하고 또래 관계 속에서 다양한 역할을 시도하는 기반이 된다.
결국 비디지털 활동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몸을 인지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인간 발달의 핵심 경험을 제공하는 장이다.
창의성과 자기정체성 형성: 느린 활동이 만드는 깊이 있는 성장이란
창의성은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번뜩임이 아니라,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창의적 사고의 뿌리는 감각, 실패 경험, 탐색, 반복, 상상과 같은 ‘비디지털 요소’에서 생겨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빠르게 정보를 소비하는 능력이 아니라, 천천히 무언가에 몰입하고 자신만의 관점을 찾는 능력이다.
비디지털 활동은 바로 이 능력을 자연스럽게 키워준다. 그림을 그리는 아이는 선과 색을 반복적으로 탐색하며 세상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청소년은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악기를 연주하는 아이는 반복을 견디는 힘과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을 함께 기른다.
이 모든 과정은 AI나 디지털 프로그램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만의 학습 방식이다.
특히 ‘완성까지의 느린 과정’은 아이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시도하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자기효능감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는 비디지털 활동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한다.
이 시기는 무엇보다도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시기인데, 아날로그 활동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디지털은 빠른 결과와 피드백을 주지만, 정체성은 천천히 고민할 때에만 형성된다. 따라서 일기 쓰기, 그림 연습, 공연 만들기, 프로젝트형 활동 등은 청소년에게 자기 탐색의 귀한 시간을 선물한다.
결국 비디지털 활동은 창의성, 자율성, 정체성이라는 성장의 핵심 요소를 단단하게 지지하는 역할을 하고, 이는 다음 단계인 성인기의 삶의 질과도 깊이 연결된다.
기술이 빨라질수록 아이들은 느린 활동이 필요하다
AI 시대는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지만, 인간의 성장 과정에는 여전히 몸과 감각, 경험과 관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건강하게 발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빠른 학습이나 디지털 능력보다, 자기 감정을 조절하고, 몸을 활용하며,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창의성을 스스로 발견하는 느린 경험이다.
비디지털 활동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뇌와 마음을 균형 있게 성장시키는 기초 체력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추느라 잃어버린 감각과 경험을 되돌려주고, 건강한 성인의 기반이 되는 정서적, 사회적 능력을 차근차근 쌓아준다.
아이들이 화면을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자신을 보고 타인을 보고 세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 느림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로 자라날 권리를 되찾게 된다.